1. 그렇다면 우리가 경계하고 책임져야 할 생각은 무엇일까요?
비욘은 지미 카터의 이야기를 예로 듭니다.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지미 카터에게 기자가 질문을 던집니다.
"혹시 불륜을 저지른 적이 있습니까?
지미 카터는 대답했습니다.
"내 몸으로는 저지른 적은 없지만 상상 속에서는 수차례 저질렀습니다"
그때 당시는 신뢰도와 지지도가 떨어졌지만 의식이 높아진 지금은 아마 지지도가 올라갔을 것 같습니다.
충동은 인가느이 원초적인 본성에서 나옵니다.
그 자체로는 책임을 묻거나 비난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충동을 잘 조절하고 어떤 충동을 더 좋은 방향으로 가져갈지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그런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행도오가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 진실을 고수하고 규칙을 존중하는 사람, 다른 사람을 일부러 해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은 열대의 밤하늘에 뜬 보름달처럼 구름 뒤에서 서서히 나타나 온 세상을 환히 비춰준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는 말의 뜻을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
지금 누리는 것 등을 당연히 여기지 않을 때, 우리의 삶은 지금과 달라질 것 입다.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선의로 행동하기를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친절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찮은 일이 아니며 소중한 일입니다.
내가 성장하고 조금 더 내면의 아름다움을 기르기 위해서는 오로지 자기 자신의 변화가 먼저입니다.
내면의 도덕적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자 아는 사람의 삶이 더 쉽고 더 자유롭습니다.
비욘은 말합니다.
이 우주는 마구잡이로 흘러가는 무심한 곳이 아니라고요.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합니다.
존재는 공명합니다.
우주는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 이면에 있는 의도에 반응합니다. 우리가 내보낸 것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세상은 세상 그 자체의 모습으로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우리의 모습으로서 존재합니다. 그러니 그 안에서 보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 우리가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네가 모르는
전투를 치르고 있다.
친절하라,
그 어느 때라도.
2. 사랑하는 이들 곁에 영원히 머물 수 없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비욘은 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냈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고 싶었던 아버지와 스위스에서 가족과 이별을 했습니다.
우리가 삶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우리가 충고를 할 때도 항상 내려놓으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입니다.
스님들은 어떻게 마음을 다스릴까요?
숲 속 사원에서 비욘이 좋아하는 스님이 계셨습니다.
이 스님은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시는 분이었고 또한 국왕도 이분을 존경하여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국왕이 스님에게 "스님도 화가 나신적이 있었습니까?"라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이에 스님께서 대답하시기를 "화가 나긴 하지만, 그 화는 아무것도 차지하지 못합니다"라고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의 내면이 떠오르는 모든 감정을 알아주고 그것을 인정해주었을 때 얼마나 삶이 깊고 넓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감정을 모두 피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그런 감정이 곧 우리 자신이라고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욘은 두려움에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사는 것보다 손을 활짝 펴고 인생을 살아가라고 이야기합니다.
3. 원죄란 있을까?
무척 민감한 질문이란 것을 압니다.
하지만 저는 불교를 믿는 사람이라 어쩌면 교회에 다니지 않아 원죄가 없다고 믿기 더 편한 거 같기도 합니다.
비욘이 태국 사원에 머물 때의 일입니다.
BBC 기자들이 태국 국왕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기자가 국왕에게 서양 기독교의 원죄 개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국왕의 대답은 " 불교도로서 우리는 원래의 죄가 아닌 원래의 순수를 믿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비욘은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전율에 휩싸였습니다.
자책등 항상 나를 질책하던 목소리가 틀릴 수도 있다면?
많은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옳다면?
사실은 인간이 온전하고 순수한 그것이 안에 있다면?
비욘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정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비욘은 남을 기쁘게 하는 것이 덜 중요해졌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그러고 싶지 않을 때조차도 자기도 모르게 늘 그것부터 챙기곤 했다고 합니다.
저도 그랬는데, 안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해졌다고 합니다.
상황이 어땠으면 좋겠는지 또는 어떻게 될 수 있을지 계속 생각하며 도돌이를 하는 것 대신에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의 반경도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저도 코로나 이후로 저한테 더 중요한 사람들 위주로 만나게 됩니다.
노는 것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저는 일을 놀듯이 하는 것이 더 많아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과 더 좋은 친구로 지내는 것도 중요해졌습니다.
지금은 여러 가지 문제로 세계적으로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에게 더 다정히 귀를 기울이고 친절하게 대해야 합니다.
4. 내가 마지막에 떠날 때 가지고 싶은 느낌은...
비욘이 승녀로 산지 몇 년 지났을 때의 일입니다.
아잔 브람 스님의 설법이 들렸습니다.
스님께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 레드 제플린의 신나는 콘서트가 끝나고 흥에 겨운 채 시원한 밤공기 속으로 나서는 기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어떻게 맞이하고 싶을까 하고 상당히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스님의 삶의 끝자락에 간암을 선고받으셨습니다.
여러 가지 치료요법과 수술을 의사가 설명해 줬습니다. 그때 스님께서는 "의사는 죽지 않나 봐"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많은 문화권에서는 죽음을 싸워야 할 것으로 대합니다.
저도 기억이 나는 것이 한국도 옛날에는 누가 죽으면 풍악을 울렸다고 합니다.
하늘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느꼈다고 합니다.
숨을 거둘 날이 오면, 그날이 언제든 저더러 싸우지 말라고 해주세요. 오히려 제가 다 내려놓을 수 있도록 어떻게든 도와주길 바랍니다. 제 곁을 지키며 다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세요.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들을 다 기억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때가 됐을 때 제가 늘 원했던 끝이 어떤 것인지 기억할 수 있도록 당신의 열린 손바닥을 보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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